[논단] 광화문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논단] 광화문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 이건영 박사
  • 승인 2019.11.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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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 박사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전 건설부 차관전 국토연구원장전 중부대 총장
이건영 박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전 건설부 차관
전 국토연구원장
전 중부대 총장

[환경교육뉴스=이건영 박사] 처음 밀라노의 두오모광장에 갔을 때의 감흥이 지금도 새롭다.

아름다운 밀라노대성당과 어울려 고만고만한 건물들에 둘러싸인 열린 공간이다. 사방으로 퍼진 크고 작은 골목길을 둘러보면 정취가 넘친다.

광장에는 온종일 관광객들로 가득 찬다. 밀라노에 오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다. 여기서 밀라노의 역사를 읽고, 엠마누엘2세의 발자취를 보고, 명품디자인이 잉태되는 문화의 냄새를 맡는다.

광장은 도시의 값진 랜드마크다.

모양새나 성격은 달라도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런던의 트라팔가광장도 인상 깊다. 유럽 도시들이 갖고 있는 이런 광장은 대개 도시의 市場, 축제나 집회 장소였다. 자연발생적인 공간이라 도시마다 나름의 역사와 특색이 있다.

서울의 광장들은 어떤가?

대표적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시청앞)은 정치에 찌든, 정치에 볼모가 된 초라한 공간이 되었다. 보통 때는 돌바닥이 썰렁하지만, 주말이면 정치행사로 뒤덮힌다. 천막과 텐트, 차일, 여기저기 만들어진 가설무대. 정치구호가 담긴 지저분한 현수막과 포스터. 그리고 확성기의 소음, 소음. 온갖 시위가 난장판이다.

다른 나라 어느 도시광장이 이렇게 시위에 시달리는가?

예전에는 여의도광장이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광장이었다. 당시 내 사무실은 광장 바로 옆이었는데, 탁 트인, 텅 빈 아스팔트광장이 내려다보기 민망했다. 여기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 대선경쟁 때 백만 인파를 모아놓고 쩌렁쩌렁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보통 때는 하루종일 자전거타는 사람들의 천국이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이 광장, 왜 만들었을까?

조순시장이 이 광장을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아스팔트 바닥이 멋진 공원으로 변했다. 물이 흐르고 수목이 우겨져 여의도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물론 한켠에 작은 광장을 남겨 두었다. 나는 조순 시장의 탁견에 감탄한다. 여의도광장이 없어지자 시위 장소가 서울광장이나 광화문광장으로 옮겨졌다.

서울광장(시청앞)은 예전에 분수와 조각이 있던 여섯 갈래 로타리였다. 도로가 사방으로 통했다. 그 도로를 막고 시위나 집회하기 좋도록 잔디를 깔았다. 그리고 겨울에는 스케이팅 링크가 들어선다.

영화 같은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왜 하필 도심 한복판에 잔디를 깔고 스케이팅링크가 들어서야 했을까?

햇볕이 쨍 한 날 잔디밭에서 선탠을 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 타라고?

이로 인해 교통처리는 힘들어지고, 주변 매연은 더 심해졌다.

광화문광장은 더 나빠졌다. 그곳은 옛날 조선시대 때 六曹거리였다. 얼마 전까지도 정부기관 청사들이 제법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어서 官衙街 분위기였다. 광장이 조성된 곳은 植樹帶였다. 그 식수대를 밀고 양쪽을 넓혀서 돌바닥을 깔아 광장을 만들었다. 오세훈시장 때였다.

그 이후 이곳에는 이명박, 박근혜정부를 거치며 끊임없이 온갖 시위와 집회가 벌어졌다. 당초에는 화단이나 고정시설물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시위하기 편하도록 철거되고 지금은 거의 돌바닥 아스팔트광장이 되어버렸다. 디자인도 볼품없고 개념도 없는 도시공간이 되었다.

박원순 시장이 다시 손을 댄다고 한다. 광화문광장재개조안이 선보였다. 여기를 보면 세종로네거리에서 외교부 앞까지 시민광장이 만들어진다. 도로는 미대사관 쪽으로 몰아붙이고,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인다.

그리고 광화문 앞에는 역사광장을 만든다.

투시도를 보면 광화문에서부터 세종로네거리까지 하얗고 넓은 돌바닥으로 덮여 있다. 물론 군데군데 몇 개의 조형물.

선진국 도시 어디에도 이런 썰렁한 대형 돌바닥광장은 없다.

박원순 시장은 볼품없고 위세만 흐르는 베이징의 텐안먼광장이나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무슨 영감을 얻은 것일까?

나름 현대적인 디자인손길이 가해지고 지하공간을 만들어 손 쓴 흔적은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광장을 만든 목적이 무엇인가고 묻고 싶다.

상점도, 그늘도, 벤치도 없는 그 넓은 공간 한복판에 누가 나가는가? 그냥 멍하니 쳐다보는 햇빛 가득한 공간일 뿐이다.

오히려 정치적 냄새가 진하다. 세월호기억공간을 만들고, 촛불상징을 부각시키는 데서 이 정권이 광화문광장을 민주 聖地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자칭 촛불정부(?)에서 보면 광화문은 전리품인 것이다. 여기 정치색을 입히니 ‘붉은 이념광장’이 될 것이다.

역사를 내세우고 문화와 예술을 핑계대지만, 이 넓은 광장은 대형 시위를 염두에 두고 구상한 것이 틀림없다. 시대착오적이다.

광장민주주의는 좌파 표퓨리즘의 자기합리화다. 각종 미디어, SNS, 인터넷 등이 판치는 오늘날, 국민들의 목소리는 다양한 경로로 표출된다. 오히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과잉이다. 국회에도, 거리에도, 술집에도 정치가 넘친다.

광장에 떼거리로 모여 아우성치고 고함치는 것이, 광화문으로, 서초동으로, 여의도로 몰려다니며, 더구나 집권당의 손짓에 따른 관제데모가 광장을 메우는 것이 바른 민주주의는 아닐 것이다. 우리 정치도 이제 성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광장의 정치를 의사당안으로 끌어들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예전대로가 좋다. 시청앞의 잔디밭이나 스케이팅링크를 없애고, 로타리형식의 교통시스템으로 환원하자. 스케이팅링크를 만들 곳이 없어 시청 앞에 만드나?

광화문도 시민에게 돌려주자.

나는 젊었을 때 광화문 인근에 살아서 매일 그 옆을 지나다녔다. 植樹帶가 차도분리대처럼 폭이 좁았지만 나무가 무성했고, 특히 가을 은행나무는 환상적이었다. 지금 광장자리에 폭 40미터 길이 6백미터 정도의 공원을 만들 수 있다. 돌바닥 공원이 아니라 풀나무로 채워진 공간이 된다. 공원은 그 자체로 오아시스다.

빌딩 숲 사이에 있는 오픈 스페이스고, 공기정화장치고, 그늘이 있고, 쉴 장소가 된다. 작아도 미니 센트럴파크처럼 살아 숨쉬는 공간이 되고, 도시 열섬효과도 완화시켜 줄 것이다. 예전처럼 은행나무도 심고 단풍나무도 심자.

시장이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수고 만들고 다시 부수고 다시 만드는 디자인실험은 이제 그만두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안. 사진제공 이건영 박사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안. 사진제공 이건영 박사